2014년 5월 27일 화요일

(6) 꼬일대로 꼬인 실타래 - 대한민국과 일본


현재 대한민국(이하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실로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는 지경이다.

정치적인 문제부터 시작해서 역사 문제, 영토 문제 등으로 인해 양국간 국민들 역시 감정의 골이 깊어져 미국이라는 존재를 삭제한다면 언제든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배경이 마련되고 있다.

그런데 안전핀 구실을 하고 있는 미국이 연이은 전쟁과 경제 문제 때문에 동북아에서 중동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 정말 이런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확률이 점점 높아진다는게 문제다.

그렇다면 과연 이 두 국가는 정말 힘의 논리로 밖에 답을 가릴 수 없는 것 일까?

일단 한국과 일본이 지금과 같이 얽히고 설킨 배경부터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은 고대부터 교류를 해 온 사이였다.

비록 지금과 같은 기틀이 잡히기 전 이었지만 중국과 더불어 가장 가까운 외국이었고 자연히 영향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존재들이었으며 사실 중국이야 육지로 이어져 있으니 우리나라와 빈번하게 국지적 충돌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남서쪽으로 세를 넓히자니 동쪽의 맹주인 고구려가 버티고 있고 그렇다고 바다를 건너 공략 하자니 백제가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어째서 육지로 붙어 있는 대륙도 아닌 섬나라였던 일본과 사이가 나빠진 것일까?

일본이 처음 우리나라와 문화적 교류를 시작한 것은 삼국 시대 때 부터였다.

가야를 시작으로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차례대로 백제, 고구려, 통일 신라 순으로 교류를 시작했다.

참 사이 좋아보이기 그지 없는 그림이 펼쳐지나 일본에서는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기존의 천황을 내 쫓고 새로운 천황을 세우며 내전의 양상이 펼쳐지게 된다.

전란이 오래갈 수록 백성들의 생활은 궁핍해지기 시작하고 거기다 설상 가상 두목을 잃은 사무라이(이하 낭인)들까지 해적질에 합류해 왜구들의 세력은 날이 갈 수록 불어나 고려의 백성들은 정말 말 그대로 탈탈 털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왜구에 한정된 이야기고 왜구가 곧 일본 조정의 대표는 아니었기에 외교적으로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일부 통일하자 순식간에 잉여가 되어버린 직업 군인들과 해적질 외엔 할 것이 없었던 기타 잉여 왜구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있어선 날이 퍼렇게 선 칼이나 마찬가지였고 언제 자신의 목이 베일지 모르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륙으로 눈을 돌리면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곧 일본은 조선에서 보낸 통신사를 통해 명나라 침공을 위해 협조하라는 서신을 그것도 아주 거만하게 보냈는데 명나라를 정벌할테니 길을 열어 달라는 말은 말 그대로 '이리오너라! 너희 동맹국 때리러 가는 길이다!'라는 것이었고 당시 일본을 어줍잖게 여기던 조선으로서는 일본의 거만한 태도와 요청이 말 그대로 미친놈이 하는 개소리로 밖엔 들리지 않았다.

그 전 까지만 하더라도 통신사를 보내는 등 활발히 교류를 하던 사이였지만 곧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임진왜란이 터졌고 이때부터 일본과 우리나라의 사이는 급격히 틀어지기 시작한다.

다만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7년이 되던 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죽었고 한반도로 쳐들어왔던 원정군에게도 철수 명령이 떨어져 그렇게 전쟁이 끝났으며 이 후 새로이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과문을 보내고 국교 재개를 요구하는 등 감정이 아닌 외교적으로는 어느 정도 냉랭했던 분위기가 풀리고 두 나라 사이에도 봄이 오는 듯 했지만 한국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고 잊을 수도 없는 경술국치로 인해 나라가 통째로 넘어가면서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특히 한반도에 무혈입성한 일본은 창씨개명, 조선어 금지, 궁성요배 등 민족 말살 정책과 더불어 미곡 수탈, 위안부 징집, 노동력 동원, 폭행 등 설명하자면 끝이 없는 인권 유린을 자행했는데 이러한 행위가 불에 끼얹는 기름으로 작용하면서 더더욱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커지게 되었다.

다행히 일본의 삽질로 말미암아 미국이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었고 원자폭탄 두 기를 투하해 마무리 함으로서 근 35년간의 치욕스런 일제강점기를 끝내고 우리나라도 독립하게 된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세계는 새로이 냉전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면서 미국의 작용과 더불어 당시의 사정 등을 이유로 두 나라의 국교는 정상화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두 나라 국민의 적개심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적개심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는데 일본을 점령한 미군정은 소비에트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본을 서둘러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고 그에 따라 전범 처리가 거의 확실하게 마무리된 독일과 달리 A급 전범을 제외한 전범들을 그대로 국가 주요 요직에 임명했기 때문이다.

이때 요직을 차지한 전범들은 최대한 미국에 협력하면서 공산주의를 저지하는 동시에 극우적 노선을 타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과거사 문제는 물건너 가 버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기틀을 마련한 극우 세력은 미국에 패해 꼭두각시가 되었을지언정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있었고 당연히 과거에 저지른 침략 행위와 인권 유린 문제를 미화시키거나 숨기는 등 철저하게 자기들 입맛대로 교육함으로서 국민들 역시 극우적 성향을 띄게 만들었다.

물론 일본의 모든 국민들이 극우화 된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치부를 철저히 숨겨 그러한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거나 잘못 알게된 국민들은 한국인들이 보이는 적개심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나 결과적으로는 반한적인 모습으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시스템이 구축된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기존의 극우적 노선에서 협력적 노선으로 바꾼다면 과연 국민들은 그런 정치인들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결국 현 시대에 이르기까지 서로간의 불신이 깨지지 않는 이유는 최초에 잘못 끼워맞춰진 톱니바퀴의 작용으로 일본에서 정치 활동을 하려면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본심이든 아니든 좋던 싫던 간에 무조건 극우 노선을 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령 이런 세태는 타파할 수 없는 것일까?

물론 어렵겠지만 아직 방법은 남아 있고 늦지 않았다.

우선 일본은 당장 극우 노선을 벗어나긴 어렵겠지만 역사 교육 개혁을 통해 여지껏 잘못 교육되어 온 역사 문제를 중립적인 시각에서 새로이 기술하여 각 학교에서 교육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과거사 문제를 청산하고 피해국에 보상을 하면서 주변국들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해 성공적으로 화합, EU의 중심이 된 독일의 사례를 연구하고 수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반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우선 현 한국인들의 정서 상 일본이 진심어린 사과의 손길을 내민다 하더라도 웃으며 맞잡아 주긴 어려울 것 같다.

당장 인터넷에 올라오는 일본 관련 뉴스 댓글만 보더라도 일본의 문제점에 대해 진지하고 냉철하게 분석해 비판하는 사람들 보단 감정적으로 욕설을 남기거나 일본 자체를 비하하는 행위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상에서도 일본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일본 극우 세력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깔보고 무시하며 비꼬는 모습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일본이 진심을 다 해 고개숙여 사죄하더라도 좋은 반응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도 위에 서술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당장 사죄를 해 오진 않을지라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을 대비해 그들이 진심으로 사죄를 하고 용서 받길 청원한다면 우리 역시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미덕을 갖춰야 한다.

그들이 사죄를 한다고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비웃음으로 일관한다면 지구가 멸망하는 날 까지 우리나라와 일본의 화합은 영영 바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지 모른다.

우리가 과거에 치욕스런 고통을 당했고 쉽게 용서하기 힘든 모욕을 당했지만 대국을 앞서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면 올바른 과거 청산과 더불어 화합의 길을 모색하여 크게는 중국, 기타 아시아 국가들까지 포용해 세계에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미국이 괜히 경제력,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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