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7일 화요일
(2) 급속하게 번진 이념대립 - 중화 인민 공화국과 중화민국
19세기, 유럽의 서구열강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무력과 불합리한 조약을 통해 식민지를 늘려갔다.
아시아의 초강대국이었던 청나라역시 이는 피해갈 수 없었고 황제국이라는 자존심으로 대항했지만 결국 앞선 기술로 밀고 들어오던 신식 군대의 힘에는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청나라의 쇠퇴는 결국 1911년 신해혁명을 통해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고 중국 역사 및 아시아 최초로 공화제 정부가 수립됐다.
허나 통치자였던 위안스카이의 무능함과 잇다른 권력 야욕에 민중은 다시 봉기했고 위안스카이 사 후 각지의 군벌들이 내전에 돌입하게 되지만 국민당과 공산당이 제 1차 국공 합작을 결성, 북벌을 감행하여 차례대로 직례군벌, 안휘군벌, 펑톈군벌을 정복함으로서 다시 통일된 중국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북벌 기간 중 장제스에 의해 감행된 공산당 숙청이 불씨가 되어 제1차 국공 내전이 발발하여 다시 전쟁이 시작됐으나 이미 숙청으로 인해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던 공산당은 명맥만 남긴채 후퇴를 하게 되고 다시 국민당 정부 주도 하에 중국의 역사는 쓰여지게 된다.
그 후 1937년, 일본 제국의 대 중국 침략이 본격화 되자 국민당은 다시 한번 공산당과 손을 잡고 제 2차 국공 합작 연합을 수립하고 일본군을 공격하지만 국민당 소속 국민 혁명군은 연일 일본군에 패해 세력이 약화되었고 공산당 소속 팔로군과 신사군은 그 세력이 비약적으로 커져만 갔다.
1945년 일본 제국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다시 세계는 평화로워지는 듯 했으나 비단 중국은 달랐다.
시작부터 3세력의 견제를 위한 연합이었던 만큼 국민당과 공산당의 사이는 일본 제국과의 전쟁이 종결되자 마자 다시 멀어지고 결국은 일본의 점령지 배분을 놓고 무력 충돌을 하게 된다.
국민당군의 공격으로 시작된 제 2차 국공 내전은 초반엔 병력, 장비, 보급 등 모든 면에서 국민당이 우세했지만 점령지를 무리하게 늘려 병력이 분산되는 전략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게다가 국민당 정부의 총체적 부패, 인플레로 인한 경제 붕괴, 그리고 이미 떠난 민심이 어우러져 1948년부터는 공산당 측에 유리하게 내전이 전개되었다.
1948년 공산당군이 만주에서 국민당군을 격파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세는 역전되어 1949년 2월에는 베이징이 함락되었고, 이어 파죽지세로 4월에는 창강을 건너 국민당 정부의 수도 난징을 함락시켰다.
이어 5월에는 최대 도시 상하이를 함락시켰고 10월에는 국민당 손에 남아 있던 최후의 대도시인 청두마저 함락되어 장제스와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도피하였다.
결국 본토는 공산당 체제의 사회주의 정부가, 대만은 국민당 체제의 민주주의 정부가 출범하여 아직까지도 반목이 지속되고 있다.
그 이후로 21세기가 된 지금까지 이 두 국가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이념 대립을 겪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불신이 우리나라 만큼은 깊지 않아 중화민국(이하 대만)의 기술과 중국의 노동력이 결합되어 수익을 창출하기도 하고 정치적 통일을 모색하기도 한다.
게다가 현재 중국은 영국과 포르투갈로부터 반환된 홍콩과 마카오를 중국 본토와는 다르게 특별 행정구로 지정하여 정치, 경제에 대해 일체 간섭을 하지 않고 있고 이를 빌미로 하여 중국은 전혀 불가능 할 것 같은 일국양제(一国两制)를 실현시킬 수 있는 나라라 자부하며 중국과 대만의 통일이 불가능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기본 법에 명시된 일국양제의 시한은 50년으로 되어 있고 이에 따라 홍콩과 마카오의 정치, 경제에 대한 보장은 각각 2047년, 2049년으로 이 기한이 지나 중국 중앙 정부에서 홍콩과 마카오의 정치, 경제를 흡수하기로 결정하면 그대로 끝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만에서도 경제적인 협력은 지향하지만 정치적인 통일은 반대하는 것이다.
만약 시국이 바뀌어 대만이 중국에 흡수 통일이 되고 홍콩과 마카오처럼 특별 행정구로 남는다 하여도 역시나 두고 볼 일이다.
이는 과거 중국에서 발생한 민주화 운동인 톈안먼 사건을 중국 정부가 무자비하게 탄압한 역사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 인권 존중 사상이 강해지고 있는 실정이지만 텐안먼 사건을 비롯한 국내에서 발생한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중국 정부의 대응을 보자면 시대가 바뀌어도 대응 방법에 있어선 변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런 중국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이유를 몇가지 설명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현재 중국에서는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고 있다는 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당장 정권이 붕괴가 된다 해도 이상할게 없을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며 별 다른 선택권 없이 중국의 지원을 받아 국가 기틀이 유지가 되고 있다.
만약 이 상태로 시간이 흘러 정말 북한 정권이 붕괴라도 된다면 중국은 재빨리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흡수, 현 북한의 영토를 조선 자치구로 바꿀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렇게 되면 한민족의 기틀이 되었던 고조선의 역사를 자연스레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고 우리내 역사는 4천년이 아닌 2천년짜리 뿌리도 없는 반쪽 역사가 될 것이다.
현재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모토 아래 역사, 문화, 경제, 정치를 공산당 주도 하에 획일화 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중국 영토 내부에 조선족이 중국의 국적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고 때문에 조선족과 같은 민족이나 다름없는 우리 한민족은 중국의 입장으로 봤을때 흡수하여 자국민이라 우겨도 이상하지 않은게 현실인 것이다.
이미 내몽골 자치구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작업은 막바지에 들어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몽골인들은 자신을 자랑스런 중국 인민으로 인식하고 있고 몽골족의 위인인 칭기즈 칸과 몽골족이 건국한 원나라를 중국의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의 대외 팽창 정책이 계속되고 있고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된 결과들을 유추해 볼때 우린 그 어느 국가들보다 중국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홍콩과 마카오가 영국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에서 다시 중국으로 반환이 될 때까지 세월을 기다린 중국의 인내심 역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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