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7일 화요일
(4) 민족까지 부정당했던 슬픈 역사 - 일본과 아이누족
현대의 일본인들이 부흥하기 전부터 일본 홋카이도 지방에는 대대로 터를 잡고 살던 선주민 아이누족이 있었다.
이들의 문화와 언어, 종족은 당시 큐슈와 혼슈 지방에 거주하던 일본인들과는 상이하게 달랐으며 동, 식물, 생필품, 자연 현상, 역병 등에 각각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흔히 인디언이라 칭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들이 어쨰서 현재의 일본인들과 섞여 살게 되었는지를 살피자면 일본의 고대 시대부터 살펴봐야 한다.
그 당시 일본은 야마토 정권(이하 일본)이 들어선 시대였는데 현재의 일본 열도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 도쿄 기준 서쪽 방면에 한하고 있었다.
반면 아이누족은 홋카이도에서 출발해 토호쿠 지방까지 진출해 있는 상황이었는데 일본은 이런 아이누족을 포함해 자신들의 통치를 받지 않는 사람들을 에미시라 부르며 정벌하려 했다.
결국 아이누족은 토호쿠 지방을 뻇기고 홋카이도에 한정해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지만 곧 홋카이도 남부까지 일본에게 떨어지고 마는데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별 다른 저항이 없었던 것 같지만 한 아이누족 소년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아이누족의 무장 봉기로 번지게 된다.
그 시기 까지도 아이누족에겐 제철 기술이 없었고 때문에 철기는 일본에서 전량 수입해다 써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누족 소년이 일본인 대장장이에게 작은 칼을 주문하려 했지만 가격과 품질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다 그만 대장장이가 소년을 칼로 찔러 죽이고 만 것이다.
1456년에 발생한 이 사건은 결국 다음 해인 1457년 아이누족의 무장 봉기로 이어지게 된다.
초반엔 아이누족도 승승장구하여 일본의 무역 거점들을 차례로 점령했지만 이 무장 봉기를 이끌던 코샤마인 부자가 타케다 노부히로의 군대에게 살해당하며 붕괴되기 시작했으며 이 후에도 약 1세기에 걸쳐 저항은 계속 되었으나 결국 패배했고 일본은 홋카이도 남부에 마쓰마에 번을 구축했다.
허나 아이누족은 이에 굴하지 않고 샤크샤인의 난, 쿠나시르·메나시 봉기 등을 통해 꾸준히 일본을 상대로 저항했지만 번번히 마쓰마에 번에 의해 저지되었다.
사실 이쯤되면 보통은 사이 좋게 지낼 법도 하지만 아이누족이 왜 이리 심하게 저항을 했는지 궁금해지는데 홋카이도가 완전히 일본의 손에 떨어지면서 아이누족의 생활은 비극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고향이라 부를 수 있는 땅을 점령한 일본으로부터 갖은 멸시와 차별을 당했으며 심지어 노예 취급을 받기까지 했고 그러한 멸시와 차별, 노예 취급으로 부터 비롯된 악습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아이누족 출신이거나 혼혈인 사람들 역시 자신이 아이누족임을 떳떳히 밝히지 못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했다.
한때 일본의 토호쿠 지방까지 진출했던 아이누족은 고향마저 잃고 꿈이라곤 찾을 수도 없는 신세가 되었지만 우연찮게 이들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이 근대에 들어 사무라이로 대표되는 도쿠가와 막부(이하 막부)에서 메이지 천황(이하 신정부)에게 권력이 집중되며 막부를 따르는 사무라이들과 신정부를 따르는 사무라이들 사이에 긴장감이 조성되었고 곧 보신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막부군은 이 보신 전쟁에서 계속 밀리고 밀려 말미에는 홋카이도까지 후퇴하게 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과거 자신들을 탄압하던 후예들이 에조 공화국을 세우자 막부군에 합류해 신정부군에 대항했다.
하지만 에조 공화국이 신정부군에 의해 함락되고 아이누족의 희망은 그대로 꺼져버렸다.
게다가 홋카이도에서 많은량의 석탄이 발견되면서 마치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자 골드러시를 감행한 미국인들과 같이 많은 수의 일본인들이 홋카이도로 몰려들었고 석탄을 수송하기 위한 철도가 설치되기 시작, 아이누족은 강제 이주와 토지 수탈 같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비록 소수이지만 러시아에 살고 있던 아이누족은 러시아에 의해 의도적으로 전통이 말살되어 버렸다.
이러한 탄압과 핍박을 받았으면서도 일본 정부로 부터는 그 어떠한 공식적인 사과도 없었으며 소수민족으로 인정 받지도 못했었다.
그나마 1996년 일본 정부는 '일본은 모두 하나의 민족'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철회, 소수민족이 존재한다고 공표했지만 아이누족은 그때도 민족으로 인정 받지 못했으며 2008년에 들어서야 민족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최근이긴 하지만 2010년 과거 자신들의 조상이 저지른 비인륜적인 폭력 행위, 정책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며 교과서에도 반영시켜 과거사를 반성하려는 미국과 사뭇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슬픈 아이누족의 역사가 남 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런 아이누족의 역사를 되짚어 봤을 때 우린 역시나 또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인간도 동물이며 동물의 세계에선 일종의 룰이나 마찬가지인 약육강식의 법칙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노력해야 하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류 평등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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