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7일 화요일

(5) 현대에도 이어지는 계층 이지메 - 일본과 부락민


현대의 대한민국이나 일본은 법적으론 신분 제도가 철폐된 법치국가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자신이 양반 가문의 후손이라느니 상놈 출신들이 건방지다는 발언을 하며 우쭐해 하면 비웃음 당하기 십상일 정도로 과거에 존재했던 신분 제도로 부터 완벽히 동 떨어진 사회가 되었다.

물론 일본 역시 메이지 유신때 국가적으로 이러한 신분 제도가 철폐되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떠한가?

애석하게도 일본은 아직 이러한 신분 제도의 망령으로 부터 완벽히 벗어나지 못했는데 현재도 '부락민'이라는 부류가 남아 있을 정도다.

이 부락민들은 신분 제도가 철폐되기 전, 즉, 현재 부락민들의 조상은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천민이나 다름 없었다.

정말 어이가 없는 것은 이들은 비교적 최근에 일본에 편입된 류큐인이나 아이누족, 이 후 합류한 재일 한국인, 재일 중국인들과는 다르게 현존하는 일본인들과 유전적으로 전혀 차이가 없는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대우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에도 시대에는 '히닌', 우리나라식 대로 한자를 읽으면 '비인(非人)', 즉, '인간이 아닌 자가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는 불교 법화경의 용어에서 유래된 비하적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을 정도로 인권과는 거리가 먼 대우를 받았을 정도다.

왜 아직까지 이런 악습이 되풀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면 신분 제도가 있던 다른 국가들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우리나라만 해도 갑오개혁을 통해 신분제가 완전히 철폐됐지만 한번 천민은 영원한 천민이라도 되는 듯 천민 출신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곧 터진 6.25 전쟁으로 인해 국가 기반 자체가 깡그리 파괴 되었고 완전히 무로 돌아간 땅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 사람들은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했기에 과거의 신분 따위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비로소 평등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카스트 제도라 불리우는 신분 제도가 존재하던 인도의 경우만 봐도 급격한 발전과 더불어 국가가 앞장 서 과거 하층민 출신에게 세금 감면 등 사회적인 혜택을 더 주었고 인도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은 신분보다 능률을 우선 시 했기에 점차 인도 국민들 사이에선 과거에나 존재하던 카스트 제도 보단 실력과 사회적 지위를 더 인정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평등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대려온 흑인 노예들이 영국으로 부터 독립한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1세기 후 발발한 남북 전쟁 때 북부 연방이 영국과 프랑스의 간섭을 막기 위한 정치적인 장치로 노예 해방을 선언해 버리면서 신분 제도가 사라졌다.

하지만 일본은 비록 원자 폭탄 두 방을 맞긴 했지만 우리나라 처럼 국가 기반 자체가 갈려버리는 큰 전쟁은 겪은 적이 없었고 인도처럼 급격한 발전도 없었으며 미국 처럼 정치적으로 갈라서 싸운 적도 없었다.

즉, 법적으로 신분 제도는 철폐된지 오래지만 국민들에겐 신분 철폐에 대한 당위성이나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건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과 비슷한 길을 걸어온 영국도 있지만 영국은 이전부터 내부에서 지속적인 개혁 시도가 있었고 결정적으로 산업 혁명이 발생하면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거대한 토지 소유보단 기술이 더욱 필요해 지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실 신분보다는 능률이 앞서는 21세기에 이러한 차별과 인식은 자연스레 도태되어야 정상이지만 어째서 일본은 아직까지 이러한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하는걸까?

우리나라는 가업보단 자신의 꿈이나 인생을 우선 시 하는 편이지만 일본의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영화 등을 보면 유독 가업을 잇는 것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에피소드를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변화를 싫어하는 일본 특유의 국민성과 살아 남기 위해 하나의 가문으로 뭉쳐 다른 가문과의 대립을 겪어온 일본에게 있어 이러한 가업을 잇는 문화는 거의 당연 시 해야하는 전통이다.

이렇게 가문끼리 뭉쳐 살다보니 마을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은 대부분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마을은 당연히 뒤 따라오는 폐쇄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살던 마을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누가 어느 집안의 후손인지 출신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고 당시 천민 출신이던 사람의 후손은 현재에 와서도 부락민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이런 부락민들에게 어떤 차별이 따라다니느냐가 궁금해 지지 않을 수 없을텐데 현대에 들어선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취직은 고사하고 결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어떻게든 잘 숨겨서 취직이 됐다 하더라도 부락민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이런 저런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 당하는 건 당연하고 부락민 가문과 보통 가문의 두 사람이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할 지라도 한쪽이 부락민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보통 가문에서는 아예 집안 전체가 쌍수들고 결혼을 반대할 정도다.

특히 취직 문제는 과연 현대에 발생한 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는 일도 발생하는데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이 사립 탐정 사무소나 흥신소 등을 이용, 비밀리에 부락민 리스트를 만들어 지원자의 출신을 대조한 뒤 부락민 출신 지원자를 불합격 시키는 등 우리나라로 치면 법적으로 금지하는 신상털기를 대기업에서 암암리에 저질렀던 것이다.

게다가 멀쩡한 사람을 부락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끌고 가 고문에 의한 거짓 자백을 받아낸 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법의 심판을 때리는 등 들어도 믿지 못할 여러가지 사회적인 불이익도 있있다.

이쯤되면 나라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한데 한 가지 에피소드 하나를 기술해 볼까 한다.

한때 일본에서는 차기 총리로 유력했던 노나카 히로무라는 정치인이 있었다.

극우 색채를 강하게 띄는 현대 일본 정치판에서 정말 보기드문 개념 정치인으로 그가 한 발언 중에서는 이러한 말도 있었다.

"한반도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학대받는 모습을 몇번이나 본 적이 있다. 나에게는 너무 심하게 보였고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불식시키고 한반도와의 신뢰 관계를 만들어 두고 싶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북한, 중국에도 비교적 우호적이었고 종군위안부 문제나 난징대학살 문제도 인정했으며 메이지 유신 때 외국의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정착하게 된 부부동성에 반대되는 부부별성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던 이런 개념 정치인이 고이즈미 준이치로에게 패해 떨어졌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부락민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특히 무언가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의표를 눈치 채지 못하게 빙빙 돌려 최대한 예의 바르게 이야기하는 일본인의 특성은 그 누구라도 알고 있을텐데 이러한 특성이 유명무실하게 부락민 출신이라는 이유 만으로 '저런 부락민 출신 같은 자가 천황 폐하를 보좌한다면 일본은 그대로 망할 것이다'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이런 소리를 했던 '아소 타로'라는 인물 자체가 개념이 없기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저런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정도면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은 갈 것이다.

아무리 부락민들의 조상인 과거 천민들이 당시 천대시 하던 직종에 종사 했다 하더라도 이런 불평등과 차별이 연좌제처럼 따라다니는 건 결코 정상이 아니다.

무슨 직종이든 사람이 합법적인 직종에 종사한다면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하는 필요한 일이고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는 일을 했다면 더더욱 천시 받아야 할 것이 아닌 그에 대한 대우를 받아야 정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의 사법체계 자체가 부실하긴 했지만 영국인과 미국인들이 대다수 범죄자 출신이었던 영국계 호주인의 후손들을 천민 취급하지는 않지 않는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기까지만 읽어봐도 충분히 눈이 찌뿌려질텐데 문제는 이러한 일본의 문제가 일본에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에게도 충분히 발생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사회만 돌아봐도 돈에 의해 좌우되는 새로운 신분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지 않는가.

이런 부락민들의 현실은 다른 방식으로 언제든 우리에게도 현실로 다가올 수 있으며 그런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숙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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